게임기획자에게 중요한 능력은 무엇인가 rootGames

페이스북에 관련 주제가 떠서 이것저것 피드백을 달다가 술김에 포스팅 해 본다.

전공인 건축과에 들어가고 나서 많은 비건축인(?)들이 건축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기획자의 영역 역시 마찬가지다. 비기획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일단 기획자, 특히 게임기획자란 직업은 좁은 의미에서는 기획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서를 작성하는 일을 한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틀린 답은 아니다. 실제로 그냥 하는 일은 그것이 주된 임무이니까.

하지만 지난 8년(게임기획만 기준으로)간의 기획 일을 돌이켜 보건데, 나의 관점으로 기획이란

- 자기만의 기획 아이디어를 내고 열심히 기획서를 쓰는 일

보다

- 집단기획(=브레인스토밍)을 이끌어 나가고 필요한 경우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며 필요한 경우 디테일을 채우고, 무엇보다도다른 팀원들 간의 업무상 링크를 발생시키고 유지하며 맡은 부분의 일이 진행되도록 하는 임무

가 핵심이라는 판단에 이르렀다.

이것은 사실 PM의 역할에 준하는 것이고 기획자는 자신이 맡은 영역 내에서 작은 PM의 역할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런 관점에서 내게 '음습한 구석에서 혼자만의 기획 아이디어 놀이'를 하고 있는 기획자는 너무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동료다. 팀장이 이런 동료에서 진정으로 동료애나 전우애를 발휘한다면 마땅히 그(혹은 그녀)를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 내어 활력을 부여하고 프로젝트 팀원들 사이를 들쑤시고 다니며 마구 인적 네트워크 링크를 이루고 돌아다니도록 채찍질해야 옳다. (쉽게 되지는 않겠지만)

그렇지 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기획자로서 짧게는 3년 길어야 5년 정도의 수명 밖에는 남아 있지 않다고 보아도 좋다. 상위 직업인 기획팀장으로 전직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운명에 처해진 것이다.

- 아이디어가 우선인가 실행력이 우선인가

이 명제는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식의 의미로 오랫동안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는데 지금은 지금 시점에서 나름 명확한 답을 내리고 있다.

닭은 달걀보다 먼저이고 실행력은 아이디어보다 먼저라는 것이 내 관점이다.

닭이 달걀보다 먼저라는 것은 생명의 존재가 생식능력의 존재보다 우선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생식능력이 없는 생명은 존재가능하지만 생명 없는 생식능력은 존재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생명의 시초로 돌아가 보면 생식능력이 없는 생명이 먼저 태동했으리라는 논리적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획자에게도 비슷한 논리를 적용하는데,

아무리 아이디어나 기획력이 좋아도 그것을 실행시키지 못하는 기획자는 공상가에 불가하다는 것이다.

최근 어디서 본 명언에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꿀 수 있지만 공부를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문장이 있었는데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해도 좋다.

그래서 기획을 하고 기획서를 쓰는 일이 꿈을 꾸는 역할에 해당한다면 팀원들과의 링크를 만들고 프로젝트가 진행되게 하는 일은 꿈을 이루는 역할에 해당한다고 보고, 나는 후자의 역할이 기획자에게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다른 논거를 찾아보자.

모바일 사업을 하고 있다보니 심심치 않게 1인 개발자를 만나게 되는데, 올라운드 1인 플레이어라 하더라도 분명히 이전 직업은 존재한다. 그런데 1인 개발자의 이전 직업을 살펴 보면 프로그래머 출신인 경우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그래픽 디자이너, 반면 기획자인 경우는 정말로 거의 없다. 딱 한 명 있었는데 그래도 스크립트가 가능한 반 프로그래머라 볼 수 있는 기획자였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인가?

우선은 생산력 측면에서 기획자란 직접은 리소스를 직접 만들 수 있는 자체 생산력이 다른 두 직종에 비해 극히 떨어지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볼 수 있다.

또 한가지 측면은 기획(좁은 의미의 기획)이란 분야가 시중에서 흔히 말하는 "개나 소나 하는게 기획"이라고 하는, 전문기획자임을 자처하는 본인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진실인게 사실이어서, 상당히 대체 가능한 업무라는 것이다.

하지만 팀 프로젝트에 있어서 팀원들간의 링크를 연결하고 프로젝트의 진행을 추진하는 것은 그래픽 디자이너나 프로그래머가 쉽게 하기 어려운 일이다. 대체가 쉽지 않은 역할이고, 그래서 기획자의 핵심 역할을 꼽으라고 한다면 대체가능한 영역보다는 대체불가능한 영역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 내 관점에 대한 두번째 논거이다.

그런 관계로 인해 프로젝트가 방황하는 경우 나는 1차적인 책임을 팀원 전체의 것으로 돌리는게 아니라 기획자에게 돌리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래픽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는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탁월한 실력을 보이지만 문제를 만들고 그것이 해결되는 전체 과정을 관리하는데 있어서는 기획자가 더 역량을 발휘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마땅을 그것을 해야하기도 하고.

만약 그것이 되지 않으면 기획자가 기획팀장, 더 나아가 개발팀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만약 신입은 누군가가 시한부 기획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내 이야기를 꼭 기억해 두면 좋겠다.



덧붙여...

게임기획을 한다고 하면 '아 그거 정말 아이디어 싸움이겠네요'라던가 '정말 번쩍하는 아이디어가 필요하겠네요'라는 반응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내 경험으로 지금까지 성공한 제품이나 서비스 중에 아이디어가 끼깔나서 성공한 케이스는 전체의 2% 정도를 꼽을 수 있을까.

대개의 대박이 나거나 시대를 바꾼 상품들은 사람들이 능히 기대하고 있는 것을 높은 완성도로 구현에 성공한 것들이었다.

흔히 사람들이 애플의 제품을 놓고 혁신을 얘기하는게 대체 애플 제품의 어디에 기획적으로 번뜩이는 혁신이 있다는 말인가. 이미 세상에는 앞서간 제품들의 사례가 수두룩했다. 페이스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페이스북이 혁신이라면 우리나라의 아이러브스쿨은 혁명이었겠다.

성공의 관건은 완성도와 파급력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기술적인 혁신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기획적으로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을 완성도 높게 '이루어' 내는 것. 그것이 기획의 가장 명중률 높은 혁신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뭐, 요새 열심히 하고 있는 블레이드앤소울도 마찬가지. 기획적인 번뜩임은 없다. 특히 전투 측면에서 이런 것을 꿈꾼 기획자들은 5년전에도 이미 수두룩하게 있었을 것이다. 관건은 그들은 그것을 이루어 냈다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와 전무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덧글

  • 듀란달 2012/07/18 03:48 #

    당신이 기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순간, 지구 안의 다른 사람 천 명이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백 명은 이미 만들고 있으며, 열 명은 이미 다 만들고 테스트 중이고, 한 명은 그 상품을 출시했다. 라는 말이 있죠.

    크게 공감하고 갑니다.
  • FlakGear 2012/07/18 07:45 #

    얼마전 콘솔 게이머까지 된 이후로 눈이 높아져서 별다른 게임이 안보이게 되었습니다. 화려한 것에 치중했죠. 하지만 또 콩그레게이트 들어가서 간단함의 미학을 일깨우게 하고 ...

    결론적으로 모습이 어찌되었든 중요치않은 듯 합니다. 얼마전 너드레이지란 게임도 그렇고 그냥 상상을 자극하면서 재밌게 만들면 되는 것 같아요. 근데 문제는 그렇게 만들 수 있는데 사람의 집착과 욕구란것 때문에 자꾸 원점에서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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